제5장

명품 브랜드의 옷과 장신구에 서설요는 무엇 하나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었다.

아는 브랜드의 옷을 골라 갈아입은 뒤, 그녀는 서둘러 지호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가 식사를 했다.

배가 고픈 것도 있었지만, 혹시라도 오래 머물다가 물건이라도 없어지면 오해받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사모님, 주방에서 도련님 분부대로 준비한 식사입니다. 혹시 입에 맞지 않는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바로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오 집사가 다가와 서설요에게 공손히 인사를 건넨 뒤,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진 음식들을 소개했다.

“이것만으로도 아주 훌륭해요. 저 가리는 거 없어요.” 서설요가 말했다.

게다가 훑어보니, 놀랍게도 대부분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들이었다.

아무래도 고명재는 그녀와 입맛이 비슷한 모양이다. 앞으로 함께 지내면서 적어도 식생활 때문에 걱정할 일은 없겠구나.

“다행입니다. 그럼 편히 드십시오. 도련님께서는 위층 서재에 계시니, 식사 마치시고 올라가 보라고 하셨습니다.”

서설요는 할 말을 잃었다.

“…….”

“그 사람이 집에 있었어요?”

“네.”

오 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잔뜩 굶주렸던 서설요는 순간 입맛이 싹 가셨다.

당연히 출근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집에 있었다니. 그것도 모자라 자기를 찾아오라고?

날 찾아와서 뭘 어쩌려고?

어젯밤 일이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오늘은 그를 보고 싶지 않았는데!

입안의 밥이 순식간에 맛이 없어졌다. 그녀는 꾸물꾸물 식사를 마치고 지호의 안내를 받아 남자의 서재로 향했다.

“똑똑똑.”

“들어와.”

“저, 부르셨어요?”

서재로 들어선 서설요는 남자의 책상에서 꽤 떨어진 곳에 멈춰 서서, 고개를 숙여 제 발끝만 내려다보며 물었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한번 쓱 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낮고 희롱하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 얼굴이 바닥에 있나?”

서설요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녀는 부끄러움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사람과 대화할 때는 고개를 들고 상대를 봐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부끄러운 걸 어떡해!

“이리 와.”

남자가 그녀를 향해 손짓했다.

서설요는 입술을 꾹 다물고 앞으로 아주 조그맣게 한 걸음을 옮겼다.

마치 한 걸음이라도 크게 떼면 돈이라도 내야 하는 사람처럼, 그 작은 발걸음이 애처로울 정도였다.

“몸은 좀 어때?”

남자가 입을 열어 물었다.

하지만 그의 질문은 서설요의 얼굴을 더욱 붉고 수줍게 만들었다. 귓불까지 새빨개져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됐다. 그냥 먼저 나가봐.”

남자는 그녀의 이런 모습이 재미없다고 느꼈는지, 실망한 표정으로 나가보라고 했다.

서설요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임시원도 그녀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좀 더 대담해져도 된다고, 늘 그렇게 주눅 들어서 움츠러들지 말라고.

임 사모님 역시 그녀의 그런 소심한 모습을 몹시 못마땅해했다. 만약 점쟁이를 찾아가 사주를 보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팔자가 남편을 흥하게 하고 임씨 집안의 사업운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임시원과 그녀의 결혼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가…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자는 그녀가 먼저 무언가를 요구할 줄은 몰랐다는 듯 잠시 놀라더니,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뭔데?”

“저… 계속 회사에 다녀도 될까요?”

“승진하고 싶어?”

고명재는 그녀의 뜻을 오해했다.

서설요는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해명했다. “아니요, 그냥 계속 회사를 다니고 싶어서요. 전 이 일이 정말 좋아서 잃고 싶지 않아요.”

아까 지호가 그녀에게 취미가 있냐고 물었다.

앞으로 회사를 안 다니게 되면, 취미라도 있어야 집에서 지루하지 않을 거라고.

그녀는 고명재가 자신을 더 이상 회사에 다니지 못하게 할 거라고 오해했던 것이다.

“그건 당신 자유야. 나한테 시집온 거지, 팔려온 게 아니잖아. 당신이 하고 싶은 일에 내 의견을 구할 필요는 없어.” 고명재가 말했다.

서설요는 감격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벅차오르는 마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감사합니다. 걱정 마세요. 우리 관계는 절대로 밖에 말하지 않을게요. 아무도 모르게 할게요.”

고명재는 말이 없었다.

“…….”

“비밀 결혼이라도 하자는 건가?”

“회사에서 저 보신 적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당신도 우리 회사 사람이겠죠! 잊으셨어요? 회사 규정에 사내 연애는 금지되어 있잖아요.” 서설요가 작은 목소리로 상기시켰다.

고명재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신은 왜 그런 규정을 모르는 거지?

“알아요. 저랑 결혼한 거… 많이 갑작스러우셨겠죠. 언제 후회하게 되실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약속드릴 수 있어요. 절 도와주셨으니, 언제든 후회가 되시면 바로 이혼을 요구하세요. 전 바로 동의할게요. 그리고 우리 사이의 관계를 절대로 외부에 발설해서 당신 얼굴에 먹칠하는 일 없도록 할게요.”

서설요는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며, 한 손을 들어 엄숙하게 맹세했다.

부자들은 다들 상대가 들러붙을까 봐 무서워한다잖아?

이렇게 먼저 확실히 말해주면, 그도 기뻐하겠지!

“허, 결혼한 지 이틀 만에 벌써 이혼할 생각부터 하는 건가?”

남자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서설요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가 화난 건가?

왜?

내가 사리분별 잘한다고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

회장님의 성격이 변덕스럽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그 친척도 똑같을 줄이야.

“별일 없으시면, 저 먼저 나가볼게요.”

그가 기분 나빠 보이니, 여기에 더 있다가는 더 언짢게 만들 뿐이겠지.

“그래.”

남자는 덤덤하게 대답하며 그녀를 보지 않으려 시선을 내렸다.

서설요는 서둘러 서재를 빠져나왔다. 문을 나서는 순간,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사모님, 전화 오셨어요.”

지호가 다가와 알려주었다.

서설요는 핸드폰을 식당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나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병원에서 온 전화일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병원이 아니라 동료인 한지연이었다.

“설요야, 결혼은 잘했어? 너 없으니까 나 바빠 죽겠다. 네 결혼 휴가가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니까 눈앞이 캄캄해!”

“지연아, 걱정 마. 나 일주일 다 안 쉴지도 몰라. 한 이틀 뒤에 출근할게.”

사실 그녀는 당장 내일이라도 출근하고 싶었지만, 의심을 살까 봐 이틀 뒤에 가기로 했다.

원래 일주일의 결혼 휴가를 낸 것은 임시원 때문이었다.

결혼 후에 싼야로 신혼여행을 가자고 했는데, 오가는 데 일주일이 걸린다고 했다.

이제 신혼여행도 갈 필요가 없으니, 당연히 빨리 출근해서 휴가를 아껴두고 싶었다. 나중에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쓰려고.

그들이 다니는 회사는 이런 점이 인간적이었다. 휴가를 모아서 쓸 수 있었고, 기한이 지나면 사라지는 식이 아니었다.

“결혼 휴가가 겨우 사흘이라고? 너무 짧잖아. 설요야, 나 그냥 투덜거려 본 거야. 내 말 때문에 휴가 줄이지 마. 네 남편이 화낼 거야.” 한지연이 황급히 해명했다.

“지연아, 오해하지 마. 너랑 상관없어. 나 일 좋아하는 거 알잖아.”

“사실 나도 네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어. 그래야 나랑 같이 마왕한테 맞설 사람이 생기지.” 한지연이 히히 웃으며 말했다.

“아, 맞다. 지연아, 우리 회사에 성이 고 씨인 사람 몇 명이나 돼?” 서설요가 다시 물었다.

그녀는 감히 고명재의 이름을 직접 말하지 못했다. 한지연이 캐물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한지연이 말했다. “고 씨는 많지. 우리 회장님도 고 씨잖아. 몇몇 계열사 사장님들도 다 고씨 집안 사람들이고. 근데 설요야, 그건 왜 물어봐?”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서설요가 서둘러 둘러댔다.

원래 한지연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갑자기 지호가 눈을 찡긋거리며 할 말이 있는 듯한 신호를 보내왔다. 어쩔 수 없이 먼저 한지연의 전화를 끊었다.

“지호 씨, 무슨 일이에요?”

“사모님, 최아라 씨가 오셨습니다.”

지호가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

“최아라 씨요?” 서설요는 의아했다.

그때, 밖에서 키가 크고 외모가 아름다운 여자가 한 명 걸어 들어왔다.

어딘가 낯이 익었지만, 어디서 봤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뭐야, 옷 입혀 놓으니까 못 알아보겠어?”

최아라는 그녀의 눈에 담긴 의문을 보고는, 코웃음을 치며 비꼬듯 물었다.

서설요는 깜짝 놀라며 문득 그녀가 누구인지 기억해냈다.

임시원과 침대에서 뒹굴며 고명재를 배신했던 바로 그 여자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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